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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익수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위원장

기사 등록 : 2016-01-14 12:41:00

박현군 기자 humanphg@people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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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사람희망] 2005년, 엄익수씨는 그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세계를 만났다.  성북천변의 삼선상가에서 8년여간 장사를 해오던 평온한 삶에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별 수 없이 상가를 비워야만 했던 상황, 그 일을 통해 엄익수씨는 인생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사람희망신문(이하 사): 엄익수씨의 삶을 돌아본다면 어땠고, 지금은 또 어떤 상황인가요.

 

엄익수(이하 엄): 전 아주 평범하고 화목한 집에서 자랐어요. 제 나이때 사람들이 거의 그렇듯 부모님 밑에서 잘 크다 스물다섯에 결혼했어요. 남편이 3대독자였지만 시부모님이 굉장히 좋은 분들이셔서 시집살이도 없었고, 참 운이 좋았죠. 덕분에 세상물정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좀 늦게서야, ‘사회’라는게 어떤 건지, 억울함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네요.

 

사: ‘억울함’을 알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어요?

 

엄: 저희 부부는 시아버지가 물려주신 가게를 운영하며 살았어요. 성북천 앞의 삼선상가였고요. 시아버지가 포목점을 해 번 돈으로 얻은 자리였는데, 우리는 거기서 인삼제품도 팔고 그랬죠. 그런데 2003년에 청계천 복개공사가 확정되고 곧 공사가 시작되며 인근의 상가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줘야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 근방에서 장사를 한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돈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갔지만, 3,40년을 장사해온 시장 상인들과 저 같이 이 장소가 중요한 사람들은 쉽사리 옮길 수 없었습니다. 납득할만한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사: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하셨나요.

 

엄: 저와 여러 시장 상인들이 같이 제대로 된 보상, 그러니까 다시 장사 할 수 있는 곳을 요구했어요. 꽤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2005년부터 시작했는데 2009년에도 1인시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끝냈어요. 더 이상 장사할 생각이 없는 분들 위주로요. 그러나 끝까지 다시 장사할 수 있는 제대로된 장소를 바랐던 저는 이 과정에서 서울시청 하청관리과와 SH공사 사이에서 계속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하청관리과는 SH공사가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하고, SH공사에 가면 하청관리과로 가라고 하고. 가든파이브의 유찰된 매장에 계약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어렵게 돈을 빌려 가도, 막상 계약하러 가면 되지도 않고... 결국 아무도 정부사업 이후 남겨진 개개인의 문제엔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거죠.

 

사: 엄익수씨에게 그 장소가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엄: 어쩌면 지금 이순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돌아가신 시아버지였습니다. 시아버지는 1.4후퇴 때 황해도에서 내려와 인천, 당진을 거쳐 서울 성북천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분이에요. 16살 때부터 황해도에서 동대문까지 자전거를 타고 포목을 사와 팔던 분이었죠.

 당진의 은행에서 근무하시던 어버지와 마침 당진에서 장사하시던 시아버지께서 만나 중매를 하셨고, 그렇게 남편과 만났어요. 결혼하고서 남편과의 사이도 좋았지만 남편 이상으로 시아버지의 사랑이 절절했습니다. 결혼 전에도 그랬고, 결혼 뒤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2년간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몰라요. 그런 시아버지가 그걸로 자식들 잘 키우라고 남기신 장소였고 저희 부부에겐 소중한 거였습니다. 

 

사: 사실 큰 고생하지 않고 그냥 돈을 받고 끝낼 수도 있었던 문제일 수도 있었군요.

 

엄: 잠시 거기서 2~30년간 장사하신 분들과 함께 당시 구청직원, 시청 직원 등을 보며 아직 참 서민들이 살아가기엔 힘든 세상이라는 걸 느꼈어요. 본의 아니게 정치적 쇼 같은 것들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고요. 실질적으로 정부사업 등으로 오래 살던 터를 옮겨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또 앞으로도 어떤 정부사업이 벌어지면 저나 오래장사하신 분들 같은 사람들이 또 생길텐데, 그 사람들을 위한 대비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최소한의 보호 시스템은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돈을 받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 그 때문입니다.  

 

사: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네요. 이제까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잖아요. 그 시간을 버티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엄: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전 끝을 보고 싶어요. 아마 어떻게든 결국 할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들이 더 생기진 말아야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큰 원동력이죠. 그리고 가족들도 힘이 많이 됐고, 제가 성당에 다니는데 신앙에도 기대곤 합니다.

 

사: 가족들은 어떤 마음인가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엄: 딸과 아들이 있는데, 제가 1인시위를 할때 피켓을 같이 만들어주기도 하고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오히려 가장 지지를 많이 해주었죠. 물론 이런 일들 때문에 가정에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그래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엔 가족도 모두 동의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너무 고지식한 건지 몰라도 전 여전히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 사람들의 애정, 추억 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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