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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영

기사 등록 : 2018-11-05 14:30:00

박우공 woogalle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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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색소포너-5

 

 


 

 

 

Lester Young

1909.8.27-1959.3.15

 

미국 미시시피 우드빌 태생. 테너 색소폰, 클라리넷 연주자.

 

뮤지션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악기연주를 배웠다. 어려서부터 가족밴드의 멤버로 무대에 섰다.

 그의 연주는 한없이 부드럽고 가벼우며 밝고 따뜻한 톤을 지녔다.

 레스터 영은 자신의 톤을 다듬기 위해 플라스틱 리드를 많이 사용했다. 합성리드는 천연 리드에 비해 보다 무겁고 많은 호흡이 실린 톤을 만들어주었다.

부드럽지만 무거운 중량감이 느껴지는 톤의 비밀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강하고 어두운 음을 향해 나아갔지만 맥이 풀린 듯 착 가라앉은 연약함은 벗어날 수 없는 그의 태생적 미학이었다.

그의 음들은 마치 배추흰나비의 날개짓처럼 여리고 가냘픈 것이었다.

 

모던하면서도 절제된 그의 스타일은 스탄 게츠, 덱스터 고든, 찰리 파커 등 많은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스타일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비밥의 탄생에 기여한 최초의 모더니스트였다.

그는 열정적이기보다 온화하고 서정적이었으며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솔로잉을 구사하였다.

그는 오늘날까지 콜맨 호킨스와 함께 테너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진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Lester Young Trio(1946), Lester Young with the Oscar Peterson Trio(1952), Pres and Teddy(1956) 등이 있다.

특히 찰리 파커와 함께 연주한 Jazz at the Philharmonic(1949) 라이브 앨범은 그의 수려한 음악적 문체가 잘 살아나 있는 명반이다.

또 평생 동료이자 절친이었던 빌리 할리데이와 함께 한 연주를 모은 The Complete Billie Holiday and Lester Young(1937-1946)에서는 두 사람의 스타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내밀한 음악적 교감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한다.

 

알콜중독이었던 그는 영양실조와 간질환으로 결국 49세에 생을 마감한다. 초기에 그는 콘 10m을 사용했으나 이후 Selmer Balanced Action을 평생동안 불었다.

오토링크와 브릴하트 피스를 사용했다.

 

illustration/park k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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