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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나라,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기사 등록 : 2016-01-12 16:49:00

사람희망신문 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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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사람희망신문편집위원장

[사람희망신문]현 정부는 무슨 이유로 일본과 성노예 합의를 그토록 서둘렀을까? 일본의 억지 주장을 왜 그리도 쉽사리 받아줘야만 했을까? 이번 졸속합의는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으로 봐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부터 전격합의 직전까지 한일 간 ‘위안부’문제 해결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지켜왔었다. 첫째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며, 둘째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이었다. 또한 품격을 갖춘 박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언행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었다. 그녀의 전임자인 이명박의 일본을 향한 비굴한 자세와는 사뭇 달랐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박 대통령 곁을 졸래졸래 맴돌며 발정 난 수캐처럼 들이대던 아베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단호하고 차가운 응대에 내심 민족적 자부심도 느꼈었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부는 서둘러 치욕적인 합의에 이르게 됐을까? 정부는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를 향해 양국이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구차한 이유를 댄다. 이 말은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19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말과 똑 닮았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속으로는 친일파를 중용하고 독립운동가들을 핍박하거나 심지어는 암살하는데 관여했어도, 겉으로나마 반일감정을 꾸며댔었다. 이승만은 최소한 일본에 대해 비굴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쪽발이’라는 욕을 먹었던 이명박도 여러 번 일본에 대해 비굴한 모습을 보였지만 딱 거기까지였지 굴욕적인 합의를 한 예가 없었다. 일본에게 어처구니없이 자존심을 갖다 바친 것은 현 대통령과 그녀의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 밖에 없다. 박정희처럼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전두환도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한 바 있다. 소위 ‘순망치한론’을 내세워 일본에게 경제협력을 당당한 자세로 요구했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인데 한국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일본의 안보를 지켜주니 일본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다. 해방 후 우리는 10명 남짓 대통령을 겪어왔다. 그들 중 확실한 친일파 출신은 박정희뿐이었다. 그런데 광복 70년이 지나 친일파 대통령을 또 한 명 만나게 됐으니 통탄할 일이다.


한국 내에서 친일파는 아직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쪽박을 차고,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이 그저 속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이완용의 후손들은 차마 정치계로 나가지는 못했으나 학계와 법조계, 재계에까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미년 삼일운동 덕분에 생겨난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사가 친일의 선봉대였음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중앙일보 역시 현 사주의 부친이 일제시대 군수를 역임한 친일파였다. 3대 일간지인 언론의 중추가 모두 친일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것을 보면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이 아직도 친일파가 지배하는 사회라 부인할 수 없는 형편이다.

 

대통령도 친일파의 후손이고, 수많은 재벌들도 친일파의 후손들이며, 언론 역시 친일 잔재가 아닌 친일 본체다. 군대 역시 친일파들이 장악했었다. 대물림이 불가능한 특수한 경우라서 그렇지 만약 군벌이 존재했더라면 재벌처럼 친일파의 후손이 아직도 우리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발칙한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친일파가 아직도 활개를 치며 오히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친일파 청산을 전혀 하지 못한 결과다. 해방 후 ‘반민특위’를 이승만이 폭력으로 해체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영화 ‘암살’에서도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2의 반민특위 해체’가 벌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성노예 만행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던 단체가 해체됐다. 그 단체 이름이 길다.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조사 및 희생자지원 위원회’다. 행자부에서 이 위원회의 존속을 집요하게 반대해 이 단체의 존립 기반이 되는 특별법이 폐기됨으로써 해체되고 말았다. 그때가 지난해 말이다. 성노예 합의와 시기가 겹친다.


50년 전인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 미국의 강요가 있었듯, 이번 성노예 합의에도 뒤에는 미국의 강압이 있었다. 친일파의 뒤를 봐주는 미국이 있어서 한국은 아직 친일파의 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권력이 모두 미래의 권력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권력은 덧없는 것일 뿐이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현재를 외면하는 자들은 미래에 대해 눈을 감은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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