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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사건개요

기사 등록 : 2018-06-04 13:17:00

사람희망신문 webmaster@people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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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협이 93년에 창립되면서 사업비와 사무실운영비 등이 계획대로 조달되지 않았다. 전철협은 늘 재정적자에 시달렸지만 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철거민권익운동을 하려면 재정자립이 필수였다.


전철협운동의 철거민권익운동은 오갈 데 없어 마지막에 강제철거를 당하는 빈민운동처럼 몸으로 때우는 그런 운동이 아니다. 대책없는 강제철거를 당하면 무한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그 전에 이주대책과 생계대책을 세우려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이 되도록 사무실과 교육관등의 시설이 운영되어야 하는 등, 재정이 많이 필요했다. 


철거민들은 항상 많은 보상을 원했지만, 이처럼 희생을 줄이며 대책을 수립하려는 준비활동에는 소극적이었고 참여도가 낮은 수준이다.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로 보상을 많이 받고 전철협을 떠나느냐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상태로 93년부터 2006년까지 늘 적자에 허덕였으며 사무실 운영 등은 이호승 대표 등이 부채를 얻어 쓴 방식으로 지탱해 왔다. 


결국 논의 끝에 2007년 총회에서 투쟁기금이라는 것을 만들기로 하였다. 투쟁기금을 만들기로 하였지만 투쟁기금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2012, 2013년에 투쟁기금의 필요성이 재차 거론되었고 다시금 투쟁기금을 만들기로 하였다.


몇몇 대책위가 형편에 맞게 투쟁기금을 납부하고 사용을 하려하는데 느닷없는 고소사건이 발생되었다. 노조원이 노동조합에 임금 등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이며 노동조합이 노총에 모든 것을 다 해달라는 것이었다. 


애당초 사기사건 자체가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내일신문이 가세했고 두 번의 기자회견을 보도하면서 전철협은 큰 충격에 빠졌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철거민=도시빈민이라고 규정하여 왜! 이리 많은 돈을 거뒀느냐? 많은 것을 받게 해주겠다며 돈을 거뒀다. 등등 어이없는 이야기로 사건을 몰아갔다. 


전철협은 1993년에 창립되었지만 창립의 주요 인사들은 1980년대 말부터 철거민권익활동을 해왔다. 61년 박정희정권에서의 헌법 등 법과 제도가 잘못되어 주거권, 생존권, 재산권이 침해되었다며 스스로 힘을 모아 대책을 수립하고 토지정의,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철거민권익운동을 위해 1993년에 창립된 단체이다. 


이 같은 연유로 늘 토건세력과 마찰이 야기되었고 토지공사(현 LH)의 탄압을 받아왔다. 성남(분당, 판교)에서 멀티탄압을 받은 이호승과 전철협은 2006년 11월 2일 ‘분당경찰서 앞 사건’이 발생되면서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투쟁기금’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운동자체가 고사될 것이라는 우려와,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며 합리적인 철거민권익운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로 투쟁기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2007년 총회에서 거론된 것이다. 


2006년도 사건의 실체와 배후세력들이 교묘히 합종연횡하면서 이호승과 전철협을 파괴해온 것이다. 


2007년 7월 27일 이호승 대표가 대통합민주신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 고소, 고발이 7건이 발생되었고 재정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를 극복하면서 몇 년간 내용을 파악하자 이들은 도시빈민운동진영과 전철협과 배타적 관계의 세력들에 접근하여 이호승과 전철협을 매도하여 2012년부터 최근까지 고소, 고발을 남발하였다.  


이호승 전철협 상임대표는 1980년대 말부터 “헌법과 개발관련법의 모호성으로 철거민이 발생된다”며 헌법과 개발관련법의 제, 개정을 주장하면서 법과제도의 미비로 발생되는 철거민들이 “합법적이며 합리적으로 대책을 수립하도록” 지도하여 왔다.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헌법과 개발법이 개발지역주민들의 주거권! 생존권! 재산권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외치며 철거민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운동을 하고 있다. 


철거민을 위해 권력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고 모든 탄압을 감수하면서 철거민권익을 도모하여 왔다.


1980년대 말부터 2006년까지는 공안당국이 집시법으로 묶어두거나 활동을 방해하였는데 2007년부터는 전철협 내부의 불만세력이나 전철협에 침투시킨 짝퉁철거민들이 전철협 운영 등에 비용을 후원해 놓고 “많은 것을 주기로 해서 돈을 내놓은 것”이라며 사기로 고소하는 등 다양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2012년 전철협으로 복귀한 뒤 전철협의 창립정신을 훼손하며 토지와주택 시민단체의 역할을 하지 않고 몇몇 지역대책위원회사람들이 철거용역과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돈벌이로 전락시킨 철거민활동을 다시 바로 잡으려 했다. 

    

이호승 상임대표는 2007년, “이명박 같은 토건세력의 대표주자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모든 역량을 다하여 정치에 뛰어들었으나 철거용역이 가세한 짝퉁철거민이 관여된 석연치 않은 사건들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으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이호승을 음해하는 세력들이 준동한 것에 대해 늘 안타깝게 말하였다. 하지만  엄청난 탄압을 받은 이호승은 굴하지 않고 이명박 정권에 대해 규탄활동을 강화하였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호승은 “박근혜로는 안된다”며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였다. 


그러던 차, 철거용역과 짝퉁철거민 등 이호승 비토세력이 다방면에서 이호승을 음해하였다. 


이호승 대표는 2015년 12월 8일 공정과평화 대표 자격으로 국회에서 개발과자본이라는 강연을 가졌다. 


이날 강연에서 이호승은 “61년 박정희정권부터 2015년 박근혜 정권까지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여 재벌을 만들고 부를 독점하면서 수많은 철거민을 양산하여 피눈물 나는 세상이 되었다”며 “2016년 4월 총선에서 이를 뒤집는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런 내용의 강연 보름 뒤 이호승은 사기사건을 빙자한 공안탄압에 위해 구속되었다. 2016년 6월 9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2017년 9월 13일 무죄선고 되었다. 검사 측의 항소로 열린 2018년 6월 1일 항소심에서도 역시 무죄선고 되었다.


우리는 지난 1980년대 말 분당에서 토지공사(현 LH)의 해체를 주장하며 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철거민권익운동을 주도한 이호승이 현재까지 겪는 엄청난 탄압과 외압에도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철거민희생을 줄이면서 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운동을 주도하는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80년대 LH로부터 시작된 탄압이 2006년 ‘분당경찰서 전철협 탄압사건’ 등 전철협의 내부분열을 도모하는 형태로 새로운 탄압을 시작한 이호승 음해세력에 대해 진실을 구명하는 노력을 다하기로 하였다.


이에 전철협 창립25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2015년에 발생된 이호승 사기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린다.



전철협 창립25주년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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